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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세상이야기

사랑하는 ○○○에게

2004년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던 지난 5년.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던 이들이 있었으니 그 동안의 시간을 되돌아 보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교생시절, 아이들과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쳐 한달 동안 딸랑 2시간 정도 수업해보고 이듬해 졸업하고 바로 교단에 섰을 땐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떨었는데... 한해 두해 하니 제법 배짱도 생기고 해서 자신감 있게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았었다. 첫 해 제자들은 이제 군대 갔다 왔을 것이고, 마지막 제자들은 이제 고2.

생각해 보면 다 정이 들었고 나름 애정을 갖고 대했지만 시간이 흘러서인지... 오래된 제자들은 이제 기억이 가물거린다. 뭐 몇 십년 교직하신는 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처지만 나의 짧은 교직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

첫해...

정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시간이라 돌이키기 조차 민망하지만 그해... 유난이 나를 많이 따라 주었던 녀석들. 밤 10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 내 시간만큼은 PC방 온 것같은 가벼운 느낌의 수업이 되도록 많이 배려해 주었지만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수업을 들어주었고, 엉성한 수업에 비해 완벽에 가까운 과제물에 정말 미안했던... 고맙다.

이듬해...

교복만 입었지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초딩이었던 녀석들. 내 말 한 마디에 쫄아서 오들오들하던 눈빛을 은근히 즐겼던 터라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먼저 얼굴에 번진다. 유난히도 유리창, 액자를 많이 깨 먹어서 골치가 좀 아팠지만 늘 '담임쌤'이라고 마치 동네 골목대장 따르듯이 장난끼 썪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해 쉬고 3년차...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해를 쉬고 새로 만났던 아이들. 전문계라서 바짝 긴장하고 들어간 첫 수업에서 난 몇 해전 교생시절의 아찔했던 기억과 함께 시선을 제대로 처리 못하는 완전 초짜로 돌아가 버렸다. 어지간하면 길거리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정말 피하고 싶던 여고생들. 다행이 교실이라 똥개도 저 집에서는 50점 따고 들어간다고... 정말 교실이라서, 내 홈 그라운드라서 간신히 한시간 버텼지... 3월이면 아직 늦겨울이라 추운데... 중복 땀을 흘렸던... 그래서 조폭영화란 영화는 다 골라서 봤었는데... 시간이 지나 정드니까 이놈의 정이 뭔지...

4년차...

어지간한 교사는 평생을 겪어야 할 경험을 난 한해 아니 한 학기에 끝냈다. 아니 딴 사람이 겪을 일까지 죄다 몰아서 다 다뤘다. 정말 하루하루 초 긴장 상태로 출근하고 파김치로 퇴근했던 그해. 근데 야들이 여름방학 지나고 오니까 딴 사람이 되어가지고... 2학기에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아기자기한 일들로 웃음보가 늘 터졌던 교실. 종례시간에 "야! 댓글 달지마! 종례 자꾸 길어지잖아!!!!" 이 말에 모두 빵 터졌었는데... 꾸중하고 혼내는 일이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로 종례만 30분 넘겼던 일이 참 많았지. 그때 난 그 이야기를 모야 책으로 쓰려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메기, 스시, 안미친, 핸똥... 이름보다 별명이 더 기억에 남는 끼 많던 녀석들. 결혼하기전에 신랑될 사람하고 꼭 한번씩 오너라. 너희들의 X파일이 지금 잘 보관되고 있다. ㅋㅎㅎ

5년차...

지난해의 경험으로 약간의 자신감을 갖고 쉽게 생각하다가 지난해 반 정도되는 숫자의 아이들에게 된통 당함. 지난해 아이들은 양반이었고 나는 매일 바보가 되었던... 매일 속고 매일 화내고 매일매일 미쳐갔던 시간.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또 노력하고 또 참고... 내가 뭔 인격수양을 하는 도인도 아니고... 그렇지만 마지막엔 진심이 통했던 녀(女)석들! 약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조금 일찍 바꿔보려고 노력을 했으면 하는 것. 딴 건 몰라도 정말 많이 참고 기다렸던 해다. 그래서 진심이 통했는지... 퇴근 전에 빈 교실에 올라가 많이 울고 많이 후회하고 많이 반성하고 많이 아쉬워했던...이 시간동안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던 것이다. 단언컨대... 이 아이들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절대행복이다! 왜냐? 나는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내가 가야할 인생의 큰 방향을 잡게 되었다. 다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이 아이들이게 희생시키고 나의 것을 찾았다는 것. 그래서 난 이 아이들에게만 '미안해'하려고 교직을 접었다. 마지막 시간에 마련해 준 조촐한 파티?에서 난 얼굴에 미소를 억지로 머금었지만 가슴은 내려 앉고 또 젖고 있었다.

그래도 고맙다고 간간히 문자 메시지 보내주고 지난 스승의 날엔 전화로 축가까지 불러주고... 바보같은 녀석들. 이 녀석들이 또 보고싶다고 찾아온단다...

결코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힘들어서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나름 재미, 감동, 행복, 아쉬움, 기대, 희망이 섞여서 인생의 참 맛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교무수첩을 열면 그때로 돌아가서 그 아이들이 팍 튀어 나올것같아서...



세상에서 스승과 제자라는 인연으로 만나주어 정말 고맙다.


2010년 6월

혼자 옛 생각에 빠져서